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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노동당 박은지 부대표를 추모하며...


그녀를 직접 보거나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한 번도 없다. 단지 젊고 참신해 보이는 진보정당 정치인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그녀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진 적도 없다. 근데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은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사람의 죽음처럼 내게 안타깝게 다가온다.

 

비슷한 세대의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녀의 살아 온 이야기를 찾아서 보니 비슷한 삶의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사범대 출신이었는데 학생 운동에 몸담다 뒤늦게 생계를 고민하면서 일상인의 삶도 이해하고, 본인도 기간제 교사도 하고 돈 잘 버는 사교육 강사의 길을 가다가 결국 일상인의 길이 아닌 진보정당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택한 것 같다. 평소 품었던 더 나은 인간 사회에 대한 갈망과 가치관에 따른 결과였으리라. 물론 나는 그녀만큼 그렇게 적극적인 삶도 아니었고 충분히 풍족한 삶을 보장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하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삶의 궤적과 그녀의 선택이 쉽게 이해가 된다. 우리 세대에 학생운동을 하거나 진보진영에 관심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겪을 만한 일반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리라. 근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여기까지였으면 좋으련만...

 

그녀가 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짐작이 가기도 한다. 진보적인 가치를 실천하는 운동가나 활동가, 정치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와 고통, 외로움은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힘들고 고통스럽고 외로운 것이다. 만약 그들이 티를 내지 않으면 그건 참는 것이지 원래부터 강한 인간들이라서 그런 걸 못 느끼거나 하는 게 아니다. 그들도 안정적인 삶을 위해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욕구가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평소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는데, 우울증에 대해 내가 전문적으로 아는 부분은 없지만 산후 우울증처럼 특별히 신체적 변화와 같은 생리적 요인이 아니라면 우울증도 인간관계나 정서적 안정 문제, 생계문제, 가정사 등 그 사람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 의해 유발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진보정당의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불안, 남편 없이 아이를 혼자 키워야 했던 한부모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의무감이 무겁게 짓누르는 상태에서, 아이의 정서나 애정의 결핍은 본인이 채워 줬을지 몰라도 정작 자신의 정서적 위안의 결핍에 대해 위로 받을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느꼈을 외로움이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구보다 씩씩하고 당당해 보였다는 그녀가 그런 비극적 선택을 했으니 그녀가 자기 내면의 아픔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평소 자기 내면의 고통을 티를 내지 않던 사람들이 갑작스런 비극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훨씬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하면서 아이가 자신의 시신을 볼지도 모를 것이란 생각을 충분히 했을 텐데, 생의 무게가 너무 가혹하게 짓누르면 더 이상의 고려도 의미가 없는지 모르겠다.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런 부분에 대해 남아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걸 눈치 채지 못하고, 관심을 가져주며 함께 하고, 위안을 주며 극복하도록 돕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의 짐을 느끼고 있는데 박은지 씨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런 마음의 짐이 생기지 않을까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젊은 날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더 노력하며 산 사람이 삶의 행복을 느끼고 누구보다 삶을 긍정하며 진보의 가치를 위해 행복한 실천을 계속하지 못한 채 왜 이런 비극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진보주의자들이 가는 길이 가시밭길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고 거기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나 자신의 현실도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인간의 존엄성, 인권과 배려, 진보와 평등, 자유와 연대 등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가 더욱 더 멀게 느껴지는 시대 현실이지만 좀 더 멀리 내다보며 서로 기대고 가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어떻게 보면 삶에 대한 무의미와 회의 속에서 살아가는 불안한 존재지만 적어도 진보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면 함께 더 멀리 멀리 가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어제 오늘 한 번도 마주해 본 적 없던 한 젊은 진보주의 여성에 대한 비보를 접하면서 마치 가슴 뜨거운 벗 하나를 잃은 것 같은 안타까움에 맘이 적지 않게 무겁다.

 

 

끝으로, 부디 인간 세상에 나와 꿈꿨던 그 세상에서 박은지 부대표,

 

행복하고 평안하길 빈다...                

                                                  

                                                           2014. 3.9.  일요일 오후에 당신을 추모하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