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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진보의 오류

시혜자적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진보, 과연 진정성이 있을까?

조카가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대학에 진학한다고 쓰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다고 쓰는 이유는 대학 진학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 친구가 공부와는 거리가 꽤 먼 친구라서 그렇다. 사람들이 저마다 타고난 능력이나 소질이 다르니 공부를 잘 못해도 자기에게 맞는 적성을 개발하여 열심히 노력하면 충분히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어야 바람직한 사회이기에 나는 조카 녀석이 공부를 잘 못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실망스런 점은 없다. 오히려 학습 능력과 같이 특정의 능력을 절대시하고 그 능력에 맞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징벌에 가까운 차별을 가하는 사회가 더 큰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물론 사회가 지식정보화 사회로 고도화 되고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이라는 게 숙련 지식 노동과 비숙련 단순 노동으로 양분화 되어 있는 게 현실이라 학생들의 적성과 소질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다소 이상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가 비숙련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차별은 불합리를 넘어 거의 폭력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큰 것이다.

 

내가 이 정도의 문제의식을 가졌다면 보통 사람들에 비해 어느 정도 공정한 잣대를 가지지 않았나 싶다. 근데 내가 이 녀석에게 실망감을 금치 못하는 것은 생활 방식이 너무 나태하고 안이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 못하면 전문계 학교에 가서 자격증이라도 따서 자기 밥벌이를 준비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애초에 부모도 그렇고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공부에 관심도 없는 녀석을 인문계 학교에 보낸 것인데, 3이 새벽 2시가 넘도록 스마트폰으로 페북이나 해대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인문계를 다녀도 자기 진로를 변경해서 다른 자격증을 준비하면 모를까 자기 소질이나 적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있던 것인지 무슨 연기자가 되겠다고 연기 학원을 다니는데 헐리우드 아이돌에 미친 미국 베버리 힐스의 철없는 백인 부잣집 아이도 아니고 가정 형편도 빈곤선에 가깝고 특별히 남다른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그냥 TV드라마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허상만 쫓고 사는 것은 아닌지 아주 한심해 보인다.

 

어제는 일전에 알고 지내던 고3 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의 한 명문대에 합격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피붙이도 아닌 이 아이의 전화 연락을 받으니 기쁜 소식이라 크게 축하해 줬는데 조카 녀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다른 한편에서 문득 내 조카가 전문계 학교에 다니면서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해서 취직을 했다고 한들 내가 과연 취업한 조카와 명문대 합격한 이 학생 둘을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때, 진보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의 한 지역위원회에서는 서로 정파를 달리 하는 사람들끼리 크게 충돌한 사건이 있었다. 상근자 채용과 관련한 것인지 어떤 중요한 의사결정을 놓고 서로 욕설을 주고받을 정도로 심하게 싸웠는데, 그 싸움 와중에 한 당사자가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 그만 상대방을 향해 , 어느 대학 나왔어. 지방대밖에 안 나온 주제에 무슨 말이 많아!’라고 고함을 질렀다. 평소 학력 차별과 학벌 사회를 비판하던 진보정당 관계자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진보연하는 사람들이 과연 한국의 학벌체제가 주는 수혜구조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어느 사회이든 어느 분야에 탁월한 능력이 있으면 희소성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 마련이다. 그건 남다른 노력과 열정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라는 측면에서 자연스런 면이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 진보주의자들 중에 최상위 학벌을 가진 엘리트들이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대중들의 호사스런 극성으로 주목을 받거나 존경을 받는 것도 이해할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런 학벌 권위는 평등을 중시한다는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먹어주는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형성되기 마련이고 다른 이들과는 다른 차별적 권위가 부여되기 마련이다. 위 민주노동당 욕설 관계자의 예에서 보듯 아무리 진보주의자들이라고 해도 한 사회의 지배적 인식이나 주류적 문화 습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치적 지향이 진보주의자인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진보 엘리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연 그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부여된 민간의 습속적 권력까지 의식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걸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는 자기보다 학벌이 낮은 사람이 자신의 권력을 넘볼 정도로 주변의 인정과 존경을 확장해 갈 때, 즉 학벌에 기댄 자기 권위가 자기보다 학벌이 낮은 사람의 노력과 능력에 의해 위협 받을 때 그 사람이 보이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 그 사람이 학벌 권위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건 그 개인적 성격 측면일 수도 있지만 대개 진보주의자로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 어느 영역에서 자기가 최상에 올라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마련일 것이다. 그리고 그걸 자신의 사회적 위신을 규정하는 주요한 자산으로 여길 것이다. 결국 진보도 문화적 차원에서의 위계나 계급이라는 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거다. 그나마 그걸 선의로(의도치 않고) 즐기면 다행일 뿐 인간 사회가 근원적으로 안고 있는 평등의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거다. 그들의 인격의 문제라기보다 불평등 자체가 인간 사회의 근원적 요인인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진보가 평등이라는 개념을 맹목적으로 이해하면서 자기 이해가 직접 관계된 불평등한 구조에서는 스스로 모순에 빠진다는 점이다. 즉 자기가 동정이나 은전을 베풀 수 있는 우월한 위치에 설 때는 마치 대단한 평등주의자가 되지만 자기가 불리하거나 궁색해질 경우 남 못지않은 경쟁주의자가 된다는 점이다. 전교조 교사가 교단 위 남의 집 자식들 앞에서는 멋진 평등주의가가 되고 입시교육 반대론자가 되지만 입시를 앞둔 자기 자식 앞에서는 훌륭한 입시 상담사가 되거나, 대학을 다니며 공사판이나 아르바이트로 자기 용돈 한 번 벌어 본 적 없고 부모님 용돈 받아가면서 생활하던 정의감에 불타는 운동권 학생이 어느 날 대기업 사원이 된 경우가 바로 이런 예가 될 것이다. 인지상정이라고 현실적으로 서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을 할 사람도 있겠는데, 바로 그 점이다.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현실을 무시하고 자기 동정이나 시혜적 입장에서 아무 책임의식 없이 주장했던 얘기들이 막상 자기 현실이 될 때는 궁색해지고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진보의 위선과 허위, 경솔함이 나오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틀린 경우가 적지 않고, 현실적으로 그것을 실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측면도 있다. 계층이나 계급은 실재하는 것이고 권력이나 명예, 부 등 사회적 가치가 불공평하게 배분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집회장에서만 모두 평등할 뿐 진보적인 교수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노조원부터 단순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조합원들까지 본인들부터 집으로 갈 때 타고 가는 교통수단에서 살고 있는 주거 환경이나 자녀들 교육비 지출까지 차이가 나기 마련인데 절대적 평등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 얘기인가?

 

진보가 주장하는 평등이 절대적 평등만이 아니겠고 합리적 차별(상대적 평등)까지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실재 확인되는 견해나 가치관은 평등의 맹목적 강조가 낳은 관성화된 가치관인 절대적 평등관에 가깝다고 본다. 진보의 평등관이 보다 현실적으로 교정될 필요가 있고 이런 과정에서 진보는 자기 위선을 극복할 수 있다.

 

진보가 책임성이 요구되지 않는 시혜적 위치나 동정에서 실천되는 측면이 적지 않은데, 되돌아보면 이런 시혜나 동정은 인간의 이타적 본성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면이 있고 또 인간 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로 만드는데 기여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자기 책임을 보다 진지하게 의식하고 자기 행동이 미칠 결과를 보다 냉정하게 인식하는 현실적인 감각이 없으면 어디까지나 위선에 머무르기 쉽다. 싸구려 동정으로 말만 앞세우다 자기가 막상 손해 보는 입장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는 사람보다 처음부터 자기 행동을 어느 수준까지 책임질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지 잘 따져서 그만큼이라도 책임을 완수하는 사람의 모습이 훨씬 더 진보적인 것 아닐까?

 

허위나 위선, 가식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념과 무관하게 인간에게는 정도만 달리할 뿐 다 나타나게 마련이고, 사회적 책임보다 자기 이익 극대화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한국의 보수들이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진보에게만 특별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러나 그릇된 모습이거나 잘못된 이상에 근거한 행태들이기에 극복하자는 것이다. 나 역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기에.




그림 출처: http://www.tate.org.uk/art/images/work/T/T06/T06734_1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