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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극좌 민족주의의 오류

명령 027호? 과연 남한만 반통일세력일까

글을 보면 사실일까 의심스런 내용도 영상 앞에서는 바로 꼬리를 내리게 된다. 글쓴이의 주관적 견해나 왜곡이 아닐까 의심스런 내용은 영상 앞에서 바로 검증되기 때문이다. 인터넷 이전의 시대, 대중의 의식을 주로 형성했던 문자 일변도의 종이매체들과 비교하면 영상 정보가 비중을 확대해가는 다중 매체의 인터넷 시대는 정보 전달에 있어 그 영향력이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유투브를 검색하다 보면 우연히도 흥미로운 영상들을 발견할 때가 많다. 근래 북한 영화 몇 편을 봤는데 북한 정보가 제한적이었던 과거와 비교하면 인터넷 시대가 세상을 어떻게 열어 놓고 있는지 실감을 하게 된다. 물론 그래도 의심하는 사람은 계속 의심하기 마련이다. 일전에 북한의 한 음악단이 부른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라는 노랫말이 들어 있는 노래 영상이 유투브에 공개 됐는데 주변에 있던 90년대 한 급진적 노동운동 조직에서 활동했던 어떤 사람은 국정원이 조작한 것이 아닌가 반문을 하기도 했다. 그 사람은 아무리 북한이라도 유치찬란함의 정도가 왕조 시대인 조선시대 용비어천가보다도 심한, ‘초딩들에게나 먹힐까 말까한 지배자 도술(?) 칭송 노래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나 본데 북한 정권을 여전히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집단으로 봤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 사람의 평소 감성을 보면 드러내지는 않아도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극좌파의 감성은 시대가 변하기에 어쩔 수 없이 물이 조금 빠진다 해도 기본 틀은 거기서 거기일 가능성이 높으니...

 


방금 명령 027라는 북한 영화를 봤다. 제목에서 유추 가능하듯이 군사 액션물(?)인데 제작 연도가 1986년도인 칼라 영화다. 한국 전쟁 당시 북한 특수 부대가 남한에 침투해 군사 시설을 파괴하는 등 특수 임무를 완수하는 내용인데, 1986년이라는 시대적 조건을 생각하면 영화 자체로는 사실 007시리즈급이라고 해도 과장된 것이 아닐 정도로 잘 만든 영화다. 폭발 장면이 다소 규모가 작고 화력이 약할 뿐 영상이 그렇게 어설프지 않고 특히 격투 장면에서의 장면 전환 속도나 배우들의 액션이 지금 봐도 수준급이다. 여배우가 의무실에서 펼치는 액션은 2002년에 첫 개봉하여 액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멧 데이먼 주연의 영화 본 시리즈가 연상될 정도다. 이 정도의 영화 제작 능력이 김일성 개XX’ 1인을 칭송하기 위해 사용됐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인데, 5000년 유구한 문화 창조 능력을 갖춘 한민족의 영화 제작 능력이 고작...

 

주체사상을 추종한다고 의심되는, 좌익 민족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툭 하면 강조하는 내용 중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안(요즘엔 듣기도 힘든 용어다)을 가장 훌륭한 통일 방안이라 주장하며 북한 정권은 통일을 진심으로 생각하는데 남한의 친미사대 정권은 통일을 원치 않거나 주한미군 주둔을 통해 무력 통일만 일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또 북한 정권은 남한 정권이나 조선일보 같은 극우신문들처럼 반공교육이나 반공사상으로 북한 민중에게 같은 민족인 남한 민중을 적대시하는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얘기하는 것을 보면 북한을 수 십 번은 가 본 사람처럼 얘기하는데, 결론적으로 남한 정권만 일방적으로 북한을 적대시하거나 북한에 대해 왜곡된 가치관을 남한 국민에게 주입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제로 나는 주변에 있던 애국 청년 학생(?)이었던 친구와 몇 번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내 견해는 남한 정권이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상식적으로 두 체제가 서로 적대시하는 상황에서 북한 지배 집단이라고 자신들의 체제 유지를 위해 북한 민중에게 반남조선 정서를 주입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지도자 생존 중의 자기 자신의 거대 동상이 공공 장소에 아무렇게 마구 세워지고 지배자가 대놓고 칭송되고 미화되거나, 정권의 가장 강력한 물리적 통치 수단인 군대를 앞세운 통치(선군정치)를 하거나, 각종 군중대회나 군사 퍼레이드, 매스게임 등 국가의 주민 동원이 손쉽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봐서 독재 체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의 결론은 항상 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광주 학살을 일으킨 전두환 같은 반민중 정권과는 절대 다르다는 것이다. 북한 특수론이나 예외론, 신비화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북한은 지구상의 어떤 사회와도 다른, 인류 역사에서 증명된 권력의 보편적 속성이나 원리에서 벗어난 뭔가 다른민주주의(?) 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북한의 식량 문제 등 북한체제의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정권의 정당성을 지지할 명분이 계속 줄어들자 결국에 하는 소리가 북한은 가난해도 빵 한 조각이 있으면 여럿이 같이 나눠 먹는데 아름답지 않느냐는 소리를 하는데, 처음에 그런 얘길 듣고 굉장히 황당하긴 했는데 어쨌든 기본적인 견해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이 영화를 보니 그 친구에게 한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같은 민족을 적으로 몰고 아무렇게 죽이는 반공 영화 같은 건 남한에나 있다는 그 친구가 이 영화를 보면 과연 무슨 말을 할까? 물론 그 친구와 논쟁을 벌인 때는 얼추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으로 인터넷이 없거나 막 정착 단계였다. , 그 친구가 언제나 강조했던 남한의 극우 언론 등에 의해 북한은 완전히 잘못 알려져 있다는 주장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시대였다. 물론 통일부 자료실에 가면 충분히 확인 가능했겠지만 그곳은 연구자 등 입장이 허용된 몇몇 특수한 사람 외에는 들어 갈 수 없는 곳이었으니...그래도 진보연 하는 사람들 중에 외국 유학을 가거나 했던 사람들 중에는 1980년대 초반에 이미 북한 체제의 전체주의적 속성을 인지했던 사람들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꼭 이성적 판단의 문제로만 보기에는 어렵지 않나 싶다.

 

영화를 보니 시작부터 끝까지 10명도 안 되는 북한 특수 부대원들에게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손날목치기 등으로 맞아 죽거나 기관총으로 사살당한 남한의 무고한 병사들 숫자가 얼추 200명은 넘는 것 같다. 거의 광주항쟁 수준의 사망자다. 새벽 비행장 습격으로 활주로에서 운동하던 남한의 병사들이 북한군 특수부대원 1인의 기관총에 떼죽음만 당하지 않았어도 사망자는 절반 정도 줄었을 것 같은데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진보가 전쟁 영화를 만든다면 최소한 평화라는 주제로 생명 존중 같은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게 상식일 텐데 어떻게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저렇게 무차별적으로 총질을 해대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건지. 이게 북한이 말하는 자주적 통일에 대한 진정성일까? 남한의 반공 영화와 비교해 보면 남쪽과 북쪽의 군복 디자인이나 색상만 다를 뿐, 도대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그 친구와 일전에 만난 일이 있었는데, 술집에서 우연히 북한 얘기를 나누게 됐다. 통닭을 안주로 시켜 먹으면서 나는 북한의 경제 체제가 GDP 통계를 공개 못할 정도로 문제가 있고 식량 문제만 봐도 문제가 많지 않냐고 비판했는데, 그 친구는 역시 GDP가 경제 상황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며 노릇하게 튀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닭을 바삭거리며 맛나게 먹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마 IMF 외환위기 사태가 벌어질 때 그 친구도 보수 정권 퇴진 외치며 무수히도 집회에 참석했을 텐데...

 

영화 말미에 조장 동지는 부상을 당해 다른 부대원을 먼저 보내고 부대원들이 탄 보트를 추격하려는 남한의 직승기’(헬리콥터) 바퀴에 폭탄을 안은 몸으로 매달려 마지막까지 임무를 완수하려고 한다. 이내 비장미와 숭고함을 강조하기 위해 연출되는 북한 영화 특유의 ~~’같은 집단 화음이 들어간 에코(울림)가 장중하게 깔리면서 최후의 대사를 읊고는 공중에서 직승기와 함께 산화한다.

 


“...동지들 임무를 부탁하오. 나는 지금 명령을 수행한 긍지로 하여 무한히 행복하오. 당의 품속에서 자란 우리 병사들에게 있어서 장군님의 전사로 한 생을 바친 것보다 더 큰 영예는 없기 때문이오...”

 

20년 전 김일성 사망 소식을 처음 접하고 맘이 무거웠던 나였는데 아마 그 때 이 영화를 봤다면 이 장면은 내게 무척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물론 부모도 아니고 주변의 헐벗고 굶주린 이웃도 아닌,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고 자기를 이용한지도 모르는 어떤 독재자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목숨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짓인지 그저 황당할 뿐이지만 말이다.

 

그 친구는 언젠가 술자리에서 주변에서 어떤 일로 자신의 이념적 가치관에 대해 무시를 당한 일이 있었는지 내게 고등학교 시절 전교조 선생님에게 이념적 영향을 받은 이후 줄곧 이념적 진정성을 갖고 살아 왔다고 자부했다. 시대적 맥락을 무시할 수 없지만 나는 당시 그 선생님의 이념적 세례가 돌아보니 굉장히 문제가 많았고 내 정신의 주체적 결정권을 빼앗기고 인생에서 소모적으로 보낸 시간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친구는 오히려 고등학교 당시의 의식화 경험을 자기 이념 형성의 근원으로 삼고 의미 있게 여기는 듯했다.

 

그 친구의 발언을 듣고 여전히 자신이 이데올로기를 선택하고 변경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자신을 지배하고 조종하고 이용하는지도 모르는 듯해 안타까웠다.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자기 밖에서 바라보며 자신을 객관화하고 성찰하는 비판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명백한 반론과 증거가 제시 되도 의미 있게 인식 되지 못한다. 이미 그 이데올로기는 맹목적으로 받드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종교 교리가 됐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윈도우가 깔려 있는 컴퓨터에 윈도우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을 아무리 설치해도 작동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운영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그 프로그램은 인식되고 작동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고의 운영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이데올로기는 기계가 갖는 맹목성과 유사한 종교적 교리와 같아질 뿐이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영화 중에 말을 거의 100% 이해할 수 있었던 유일한 영화였지만 참으로 씁쓸한 영화였다. 손날목치기는 남북한 어느 쪽에게도 통일의 방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출처(위에서부터 순서대로)

http://northkoreanfilms.files.wordpress.com/2011/08/order-no-2700129304-52-35.jpg?w=640&h=359 

http://pds21.egloos.com/pds/201202/15/14/e0064314_4f3b0f912631b.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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